나의 첫 교직 생활은 1985년 평창군 대화면 신리국민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여름 방학이 오면 한 학교에서 여선생님 두 명은 무용 연수에 꼭 참여했어야 했다. 왜냐하면 가을 운동회 때 단체무용을 해야 하는데 무용 작품을 만들어 음악까지 준비하는 일이 당시 학교에서 개인이 하기는 어려웠다. 같이 발령 받은 동기는 매스게임, 나는 고전무용을 맡기로 했다.
드디어 내일이 운동회다. 교무실 책상 위에는 운동회 시상품과 경기에 쓰일 물품들이 가득 쌓여있다. 선생님들은 각자 맡은 운동회 경기 물품들을 점검하기에 바쁘다. 나는 입장 퇴장 때 쓸 음악 테이프와 고전무용에 쓸 테이프를 순서에 맞게 정리하고 의상과 부채를 점검하고 있었다. 무용은 관심도 없고 몸치인 나는 학교에서 신규라 못한다고 말할 용기조차 없었다. 과연 내가 부채를 자유자재로 펴고 접으며 아이들을 잘 지도할 수 있을까 걱정부터 되었다. 개학하자마자 시작해서 한 달 넘게 무용 지도한 결과 어제 총연습에서 부채춤이 무사히 통과되었다. 내일 있을 운동회 때 아이들이 방긋방긋 웃으며 대형을 잘 만들며 운동회의 하이라이트인 부채춤으로 참석하신 분들로부터 박수를 많이 받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는 창문을 적시고 있었다. 가을 운동회는 교육장님부터 관내 각 학교 교장 선생님들과 지역 유지 및 학부모가 참여하는 마을의 큰 잔치로 구경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았다. 일기예보에 내일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니 운동회 날 아침은 6시에 출근해야 한다. 운동회를 내일 하지 않으면 순차 연기(順聯)인데 주룩주룩 내리는 비가 빨리 그쳤으면 좋겠다. 당시에는 운동회 날짜를 잘 잡는 것도 교장 선생님들의 복이라는 말도 있었다. 만약 운동회 당일 비가 오면 내빈 식사와 교직원 식사도 취소해야 하고 초청장을 보낸 곳마다 전화를 해야 한다. 하지만 내일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니 교장 선생님께서는 일기예보를 믿고 운동회를 하기로 결정하셨다. 개선문 세우기, 그늘막 치기, 만국기, 백회로 선을 긋는 것도 비가 내리니 모두 내일 아침 해야 한다. 제발 오늘 저녁이라도 이 비가 그치기를 바라며 나는 학년 경기에 쓸 용품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운동회를 보시러 엄마가 오셨다. 단양에서 아침 9시에 출발하셔서 오후 4시쯤에 도착하셨다. 교통편이 좋지 않은 때라 단양에서 제천, 영월을 거쳐 평창 대화를 지나 신리까지 오는데 7시간이 걸렸다고 하셨다. 드디어 저녁 7시쯤 비가 그쳤다. 천만다행이었다.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늦게 잠들었다. 새벽에 엄마가 나를 깨워주셨다.
아침 6시에 학교에 출근하니 어제 내린 비로 운동장 곳곳에 작은 웅덩이가 생겨 물이 고여 있었다. 아직 어두운데 학교 주무관 두 분이 손수레에 흙을 가득 담아 작은 웅덩이를 메우고 계셨다. 우선 개선문부터 세워야 한다. 개선문 다리 부분을 웅덩이에 넣고 흙으로 채우고 지지대까지 만들어 단단하게 고정해야 한다. 다음은 만국기를 달아야 한다. 학교 옥상 중앙에서 묶어 다섯 줄로 내려 사방으로 퍼지게 해야 예쁘다. 선생님 다섯 명이 어제 종이상자에 감아놓았던 만국기 줄을 풀어 나무 아래까지 가지고 가면 남선생님 한 분이 사다리를 놓고 나무에 올라가 줄로 묶었다. 그늘막은 청군석, 백군석, 본부석까지 세 곳은 반드시 설치해야 했다. 그늘막을 펼치고 긴 막대를 하나씩 그늘막 구멍에 끼워 동시에 세우려면 교직원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 이제 마지막 준비로 남자 선생님들은 백회로 100m 달리기 선을 그었다. 덜그럭거리며 구르는 통에서 백회가 나오지 않으면 발로 툭툭 차면 하얀 가루가 뿌려지면서 삐뚤삐뚤 줄을 그어준다. 여선생님들은 운동회 시상품 진열 및 앰프 준비와 구급약품 등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10시에 과연 개회식을 할 수 있을까 조바심이 나니 손발이 더욱 빨라졌다.
9시쯤 되니 등교하는 아이들도 있고 장사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남자 선생님 한 분은 교문 앞에서 장사꾼들을 개회식 전까지는 막았지만 장사꾼들은 운동회가 시작되면 운동장까지 들어와 운동회도 구경하고 물건도 팔곤 하였다.
마침내 10시 개회선언으로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교장 선생님 대회사가 끝나면 교육장님 축사로 이어진다. 경기 규칙과 배점을 체육부장님께서 설명하고 나면 국민체조로 모두 준비운동을 한다. 선수퇴장 하면 학생들은 선생님의 호각 소리에 맞춰 청군 백군 번갈아 구호를 외치면서 운동장 뒤로 퇴장한다. 청군석 백군석으로 나누어 아이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경기가 시작된다. 경기와 무용은 총연습 때에 중복되거나 준비시간이 더 필요하면 프로그램 순서를 조정하기도 했다.
내빈 경기가 끝나면 다음 순서는 내가 지도한 고전무용이다. 나는 콩닥콩닥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조례대 위에 올랐다. 입장 음악에 맞춰 아이들은 제자리에 줄을 잘 맞추어 섰다. 고전무용이 시작되고 아이들이 부채로 파도처럼 물결을 만들어 보일 때 박수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큰 원을 세 겹 만들어 꽃을 만들며 부채를 파도처럼 흔들자 내 귀에는 더 크게 박수 소리가 들렸다. 고전무용, 매스게임할 때는 모두가 아이들에게 집중하며 멋진 장면에는 박수를 보내고 학부모들은 자기 자녀에게 눈을 떼지 않으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1학년의 바구니 터뜨리기는 오전 경기의 마지막이다. 나는 경기를 보면서 맛있게 냠냠! 즐거운 점심시간을 알리는 문구를 쓴 종이를 접어 놓고 바구니를 청색과 백색으로 싸면서 안 터지면 어떡하지 너무 빨리 터지면 재미없는데 즐거운 점심시간이라고 써넣은 종이가 과연 잘 펼쳐질까를 걱정하던 여선생님들의 말들이 생각났다. 잠시 후 백군 바구니의 즐거운 점심시간 문구가 활짝 펼쳐졌다. 오색 풍선과 색 테이프 그리고 색종이 조각을 바구니에 넣으면서 걱정했던 말들도 풍선과 함께 코발트색 가을 하늘로 높이 날아갔다.
점심시간은 1시간이다. 운동장과 교실 곳곳에서 가족들과 삼삼오오 모여 점심을 맛있게 먹는다. 오후 첫 경기 시작은 우리 반 달리기였다. 아이들이 출발선에서 제자리, 차렷, 화약총을 쏘면 첫 줄 여섯 명이 출발이다. 화약 냄새가 내 코끝에 와 닿을 때 나는 결승선까지 달려가 일등부터 육등까지 줄을 세워 앉혀 달리기가 끝나면 인솔하여 응원석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
청백 줄다리기 경기가 시작되면 부모님들도 몰래 밧줄 끝으로 달려가 같이 잡아당긴다. 반칙이라고 고성이 오가기도 하지만 선생님이 이긴 쪽으로 깃발을 올리면 승복한다. 청군이 이기겨 선생님의 깃발 신호에 따라 아이들은 청군 만세하며 만세 삼창을 불렀다.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행운을 잡으라는 게임은 드럼통에 아이가 들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낚싯대를 넣으면 상품을 걸어준다. 낚싯대에 무엇이 걸려도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마냥 아이들처럼 좋아하셨다.
청백 계주는 운동회의 마지막 경기다. 자기 팀이 앞서 달리면 아이들의 응원 소리는 커지고 계주를 하는 아이의 부모님은 목청껏 달리는 아이를 응원하며 함께 달리곤 한다. 결승선에 먼저 도착하면 운동장은 기쁨의 함성으로 가득하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청백 점수 차가 너무 벌어지면 교감 선생님께서는 응원 점수로 청백 점수 간격을 많이 좁혀 주신다. 폐회식을 하고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교직원들은 아침에 설치한 물품들을 정리해야 한다.
오후 5시 정도가 되니 어느 정도 운동장 정리가 되었다. 몸은 녹초가 되었지만 비가 그쳐 운동회가 잘 진행되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2019년 겨울 코로나가 유행되기 전까지 34년 동안 이렇게 나는 가을을 보냈다.
지금은 40년 전처럼 초등학교에서 만국기 펄럭이는 가을 운동회의 모습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요즈음은 체육관에서 봄이나 가을에 운동회를 한다. 운동회를 보고 나서 엄마는 나에게 너는 앞으로 무용은 되도록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 후 10년 동안 여름방학이 되면 무용 연수를 받았다.
2024년 여름은 더위가 늦게까지 기승을 부렸지만 오늘은 가을바람이 제법 살랑거린다. 아파트 홍보관 모델하우스 앞을 지나는데 반짝반짝 빛나는 만국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나의 가을을 차지했던 가을 운동회의 종이 만국기는 반짝거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의 환한 웃음과 함성이 가득 들어있었던 만국기에는 지난 34년 동안 나의 가을이 낙엽처럼 쌓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