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3-4장 “교회를 전멸시키려는 악인들의 음모와 ‘죽으면 죽으리이다’ 신앙” 신원균 목사님의 강해를 바탕으로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했습니다.

에스더 3-4장: 교회를 전멸시키려는 악인들의 음모

에스더서는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하나님의 교회(이스라엘)를 진멸하려는 사탄의 세력과 이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섭리를 보여주는 위대한 성경입니다. 분당한마음개혁교회 신원균 목사님의 강해를 통해 에스더 3장과 4장에 나타난 영적 전쟁과 성도들이 가져야 할 ‘섭리 신앙’에 대해 깊이 나누어 보겠습니다.

1. 하만의 등장과 영적 전쟁의 서막 (에스더 3장)

에스더 3장에는 ‘하만’이라는 인물이 아하수에로 왕에 의해 권력의 이인자로 세워집니다. 성경은 하만을 ‘아각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아각은 과거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을 괴롭혀 하나님께서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던 ‘아말렉 족속’의 왕을 칭하는 이름입니다. 즉, 이 싸움은 단순히 모르드게와 하만의 개인적 갈등이 아니라, 이스라엘(교회)과 아말렉(사탄의 세력) 간의 오래된 영적 전쟁의 연속인 것입니다.
대궐 문에 있던 모르드게는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도, 절하지도 않습니다. 이는 단순한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주하신 아말렉 족속에게 머리를 숙일 수 없다는 분명한 ‘신앙적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하만은 모르드게 한 사람뿐만 아니라 페르시아 제국 내의 모든 유다인을 전멸시키려는 무서운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2. 교회를 향한 세상의 거짓 프레임과 핍박

하만은 왕에게 유다인들을 고발하면서 “그들의 법률이 만민과 달라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않으며, 왕에게 무익한 존재들”이라고 모함합니다. 이는 과거나 지금이나 교회를 핍박하는 세력들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방법입니다. 교회가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 무질서한 집단이며, 사회에 반하는 세력이라는 거짓 프레임을 씌워 교회를 탄압하는 것입니다. 신원균 목사님은 이러한 하만의 모습이 오늘날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반기독교적,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의 공격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경고합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를 가장 싫어하고 교회를 씨를 말리려고 하는 그러한 이데올로기가 있습니다. 바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입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펼치기 위해서는 기독교가 전멸이 되어야 그 사회에서 기독교인이 한 명도 없어야 자기들의 꿈을 펼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주는 유물론이기 때문에 절대로 신앙을 인정할 수 없고 기독교는 사유재산과 자유민주주의의 이런 가치들을 존중하기 때문에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야 된다라고 하는 공평, 평등 사회정의 이런 목표에 가장 반대가 되는게 기독교 세계관이기 때문에 기독교를 전멸시키려고 하는 이런 모습을 봅니다.
그리하여 중국에서도 공산당이 들어서면서 기독교인이 전멸했고 북한에도 그 어마어마한 장로교회의 평양 대부흥을 일으키면서 평양 신학교가 존재했던 그 북쪽에 어마어마한 장로 교회들이 전부 다 전멸하게 되는 이런 일이 있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런 좌파 사회주의 이념에 빠져 가지고 그렇게 좌파 교회들과 자파 목사들이 어리석게도 좌파 정치인들을 옹호화하면서 선거로 그들을 뽑고 그들은 무시무시한 권력을 가지고 차별 금지법이라고 하는 동성애 옹호라고 하는 이러한 교회를 전멸시킬 수 있는 이런 법들을 성큼성큼 내놓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겁니다. 교회를 파멸시키는 일에 좌파 교회와 좌파 목사들이 앞장서고 있는 겁니다. 이건 너무너무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이제 이러한 세계관에 어마어마한 대립이 폭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이런 좌파 교회라든가 좌파 목사의 이러한 신앙의 울타리 안에 있다라면 반드시 떠나야 됩니다. 큰일 납니다. 신앙이 붕괴가 될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 있는 겁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이런 우파적 세계관과 또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그런 교회로 옮겨서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하셔야 되는 겁니다. 이렇게 죽이고 도하고 재산을 전부 빼앗아라. 씨를 남기지 말고 아주 전부 죽여라. 이게 에스더서의 주제가 되는 것이죠.
결국 하만은 ‘부르(제비)’를 뽑아 12월(아달월) 13일을 유다인 진멸의 날로 정하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라는 조서를 전국에 내립니다. 교회가 뿌리째 뽑힐 어마어마한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섭리를 일깨우는 모르드게의 일침 (에스더 4장)

이 절망적인 소식을 들은 유다인들은 베옷을 입고 대성통곡하며 하나님께 회개하며 부르짖습니다. 모르드게 역시 애통해하며 이 사실을 왕후 에스더에게 알리고 왕에게 나아가 민족을 구원할 것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에스더는 주저합니다. 당시 페르시아 법에는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아가면 사형에 처해졌고, 에스더는 이미 왕을 보지 못한 지 30일이나 지났기 때문입니다.
이때 모르드게는 신앙의 역사에 남을 위대한 일침을 가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에스더 4:14)
모르드게는 에스더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합니다. 고아였던 그녀가 제국의 왕비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나 그녀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교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교회를 살리는 도구로 쓰임 받기 위한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이었음을 일깨워 준 것입니다.

4. “죽으면 죽으리이다” – 섭리에 순종하는 결단

모르드게의 훈계를 통해 섭리적 사명을 깨달은 에스더는 두려움을 떨쳐냅니다. 그녀는 수산 성의 유다인들에게 3일간의 금식 기도를 부탁하고, 자신도 시녀들과 함께 금식한 후 왕에게 나아가겠다고 결단합니다.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스더 4:16)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고백은 자포자기가 아닙니다. 이는 나의 생사화복을 철저히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섭리에 맡기겠다는 위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나를 살리시든 죽이시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에스더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식, 재물, 직업, 재능은 나만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돕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주신 ‘섭리적 선물’입니다. 에스더 3-4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섭리 신앙’으로 무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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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 묻는 질문 (FAQ)

Q1. 모르드게는 왜 당시 실세였던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나요?
A. 개인적인 고집이나 단순한 민족적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만이 하나님께서 영원히 대적하시겠다고 저주하신 ‘아말렉 족속(아각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게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신앙적 지조를 지키기 위해 우상과 대적에게 무릎 꿇지 않은 것입니다.
Q2. 하만이 유다인을 모함할 때 사용한 논리는 무엇인가요?
A. 하만은 유다인들이 “자신들만의 법(율법)을 지키느라 왕의 법률을 지키지 않으며, 국가에 아무런 유익이 없는 반역적인 무리”라고 모함했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세상 권력이 기독교(교회)를 핍박할 때 주로 사용하는 ‘거짓 프레임’입니다.
Q3.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말한 진짜 의미는 무엇인가요?
A. 당시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아가는 것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였습니다. 에스더의 이 고백은 목숨을 포기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왕이 나를 살려주어 교회를 구하든, 아니면 내가 죽음을 당하든 모든 결과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온전히 맡기고 순종하겠다”는 숭고한 믿음의 결단입니다.
에베소서 4장: 교회의 하나됨과 성도의 교제를 바탕으로, 분당한마음 개혁교회 신원균 목사님의 주일 설교를 요약 정리하였습니다.

교회가 하나 되어야 하는 성경적 이유와 방법

오늘 신원균 목사님의 주일설교는 에베소서 4장 말씀을 중심으로 ‘교회의 하나 됨’이 얼마나 소중하고 지켜내기 어려운 가치인지,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가 어떠한 신앙의 토대를 쌓아야 하는지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1. 유형교회를 지탱하는 4가지 교제

교회는 보이지 않는 우주적 교회(무형교회)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성도들이 직접 모여 신앙을 나누는 ‘유형교회’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 유형교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4가지 교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 예배의 교제: 성도들이 한 장소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조직된 공동체로서의 교제입니다.
  • 성례의 교제: 세례와 성찬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외적으로 고백하고 증명하는 예식입니다.
  • 법과 질서의 교제: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이기에 소속된 교단과 개교회의 법을 존중하고 지켜야 합니다.
  • 헌금과 헌신의 교제: 국가의 지원 없이 성도들의 자발적인 헌신, 봉사, 재정적 후원으로 신앙 조직을 유지해 나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11~12 krv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 그리하니라

2. 에베소서가 말하는 ‘하나 됨’의 비밀

에베소서 4장을 보면 ‘하나(One)’라는 단어가 무려 8번이나 등장합니다. 몸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주도 믿음도 세례도 모두 하나입니다. 천국에는 교단이나 파벌이 나뉘어 있지 않습니다. 훗날 천국에서 우리는 아브라함, 모세부터 우리 세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의 백성’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 요한복음 17장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제자들과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이신 것처럼 성도들도 서로 다투지 않고 하나가 되어, 세상 사람들이 그 사랑을 보고 감동하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나의 작은 욕망과 고집을 내려놓고,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사신 소중한 공동체가 찢어지지 않도록 양보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에베세소서 4:1~8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5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6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3. 교회의 질서와 성경적 장로교회 제도

교회가 다툼 없이 하나 되기 위해서는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규칙과 제도가 필요합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를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1세기에 성경을 기록하던 사도직은 중단되었고,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이 세워주신 말씀 사역자(목사와 신학자)와 다스리는 장로들을 통해 통치되는 ‘장로교 제도’를 따르는 것이 가장 성경적입니다. 다 사도가 되려 하거나 완력으로 직분을 얻으려 싸우면 교회는 분열됩니다. 직분은 섬김을 위해 성령께서 주시는 것임을 깨닫고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2:29 krv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무엇보다 교회의 하나 됨을 강력하게 지켜주는 무기는 ‘바른 교리’입니다. 신앙의 질서와 교리를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맹목적인 주장을 펴게 되고 결국 어린아이처럼 다투게 됩니다. 성경 공부와 교리 공부를 통해 장성한 분량의 신앙인으로 자라나면, 첫째로 양보와 절제를 아는 성숙한 어른이 되고, 둘째로 신천지와 같은 간사한 이단의 유혹에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부부가 신앙관, 경제관, 정치관에서 하나가 되면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듯, 교회도 진리와 굳건한 질서 안에서 하나가 될 때 흔들림 없는 그리스도의 강건한 몸으로 세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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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유형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기 위해 성도들이 나누어야 할 4가지 교제는 무엇인가요?
A1. 성도들이 정기적으로 모이는 ‘예배의 교제’,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성례(세례와 성찬)의 교제’, 교회의 규칙을 존중하는 ‘법과 질서의 교제’, 그리고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헌금의 교제’입니다.
Q2. 성경에서는 왜 그토록 교회의 ‘하나 됨’을 강조하나요?
A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피눈물을 흘리며 제자들의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인간의 모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으로 만들어진 가장 값진 선물이기에, 세상 사람들이 교회의 하나 된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Q3. 교회에서 굳이 딱딱한 교리나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3. 에베소서 4장의 말씀처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어린아이의 수준에서 벗어나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기 위함입니다. 진리를 명확히 알아야 질서를 존중하게 되며, 사람의 궤술이나 이단들의 간사한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튼튼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오늘도 성경공부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웃사를 왜 죽이셨는가? 다윗의 인내와 법궤 사건이 주는 영적 교훈입니다.

사무엘하 4장부터 6장까지의 말씀을 바탕으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과정과 성도들이 종종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웃사의 죽음’ 사건을 깊이 있게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내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조급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속 다윗의 모습과 법궤를 옮기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리는 자세와 성경적인 지식의 중요성에 대해 함께 나누겠습니다.

1. 다윗의 기다림: 조급함을 버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만의 왕으로 약 7년 6개월(8년 가까이)을 통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셨으니 당장 12지파의 통일 왕국을 이룰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요?

다윗은 억지스러운 내전이나 폭력적인 방법으로 왕권을 차지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며 하나님의 섭리와 때를 잠잠히 기다렸습니다.

이스보셋(사울의 아들)의 부하였던 레갑과 바아나가 반란을 일으켜 이스보셋을 죽이고 다윗에게 머리를 가져왔을 때도, 다윗은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불법적인 피를 흘린 그들을 처형하며 공정과 정의를 세웠습니다. 그 결과 적대적이었던 베냐민 지파의 마음까지 얻으며 평화롭게 12지파의 왕으로 추대될 수 있었습니다.

💡 영적 통찰:

성도의 삶에도 목표는 맞지만 과정과 방법이 틀릴 때가 있습니다. 개인의 욕망으로 승부를 내기보다, 십계명의 방법대로 천천히 하나님의 섭리를 의지하며 걷는 것이 성경적인 신앙입니다.

2. 올바른 기도의 기준: 내 욕망인가, 성경적 원리인가?

많은 성도들이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고민합니다. 그 이유는 기도의 방향이 ‘개인의 욕망’에 치우쳐 있기 때문일 때가 많습니다. 주기도문에서 공적인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듯, 우리의 기도 역시 공교회(교회와 성도)를 위한 기도와 개인을 위한 기도의 비율을 맞추어야 합니다.

또한, 신명기와 출애굽기에 나타난 ‘십계명’의 원리를 따라 기도하고 서원해 보십시오. 무작정 부와 건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 건강과 물질을 주시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어떻게 쓰겠습니다”라는 바른 목적과 정체성이 확립될 때, 하나님은 그 맹세와 서원을 귀하게 보시고 풍성한 열매로 응답하십니다.

3. 핵심 질문: 하나님께서 웃사를 왜 죽이셨는가? (사무엘하 6장)

사무엘하 6장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시온성)으로 옮겨올 때 발생합니다. 소들이 뛰어 법궤가 넘어지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손으로 법궤를 붙든 ‘웃사’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맙니다.

선한 의도였는데 왜 하나님은 진노하셨을까요?

바로 ‘성경적 지식(교리)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습니다.

  • 잘못된 운반 방법: 율법(레위기)에 따르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는 수레에 싣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레위인들이 어깨에 매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 거룩함에 대한 훼손: 법궤는 인간이 함부로 손을 대어 지켜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이방 블레셋 사람들의 방식(새 수레)을 따라 편하게 옮기려 했던 성경적 무지가 연속적인 죄와 참사를 낳은 것입니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롬 10:2)

아무리 열심이 특심이어도, 성경적 지식(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열심은 자칫 자기 의를 드러내거나 징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4. 다윗의 춤과 미갈의 교만: 진정한 예배자의 태도

이후 법궤를 어깨에 매고 올바른 방법으로 운반할 때, 다윗은 너무 기뻐서 화려한 왕복을 벗고 평상복인 ‘배 에봇(나실인과 같은 헌신과 겸손의 상징)’을 입은 채 춤을 춥니다.

하지만 사울의 딸 미갈은 왕의 체통을 버리고 계집종들 앞에서 몸을 드러냈다며 다윗을 조롱합니다. 미갈은 ‘하나님의 임재(예배의 회복)’가 주는 감격보다 ‘자신의 신분과 명예’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결국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이 없는 징계를 받게 됩니다.

다윗은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천하게 보일지라도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라고 고백합니다. 메시아의 왕국(교회)은 왕의 권세가 아닌, 하나님 앞에서의 겸손한 예배로 세워진다는 것을 다윗은 뼈저리게 배웠던 것입니다.

📝 글을 맺으며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견고하게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 백성 이스라엘(교회)을 위하여 하나님이 세워주셨음” (삼하 5:12)을 명확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 건강, 재물 역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도구입니다. 성경에 대한 바른 지식으로 무장하여 무지한 열심을 경계하고, 하나님 앞에서 세상의 어떤 체통보다 예배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진정한 예배자로 서기를 소망합니다.

분당한마음교회 신원균 목사님 설교를 요약하며 성경이 잘 읽히지 않을 때는 목사님 설교와 목사님이 쓰신 개혁주의에 기초한 신약성경해설을 같이 읽으며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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