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행동하는 순종으로 요약되는 믿음의 모범입니다.

아브라함은 목적지를 모른 채 고향을 떠났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보기 전에 먼저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의 믿음은 머릿속의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된 행동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창세기와 히브리서 11장을 중심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불안한 일상을 사는 우리가 그 믿음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 정리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무엇인가요?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근거로 삼고, 그 말씀대로 실제로 행동한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환상이나 눈에 보이는 증거를 근거로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를 붙들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믿음은 맹목적인 열심이 아니라 말씀에 기초한 신뢰라고 설명됩니다.

아브라함은 왜 고향을 떠나야 했나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먼저 부르셨고, 그 부르심은 익숙한 환경과 의존하던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요청이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하나님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전합니다. 즉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었고,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그를 불러내셨습니다.

이 여정에 관해 열린교회 김필곤 목사의 히브리서 11장 8~10절 설교는,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서 머물자 아브라함도 함께 지체했고, 이후 데라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부르심이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아브라함 역시 처음부터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친척인 조카 롯과 함께 이동하는 등 단계적으로 순종을 배워 갔다는 해석입니다.

아브라함의 여정
아브라함의 여정

아브라함의 믿음이 보여 주는 세 가지 특징

아브라함의 믿음은 말씀에 근거하고, 순종으로 표현되며,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는 세 가지 특징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믿음의 근거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약속(창세기 12장 2~3절)을 근거로 움직였습니다.
  2. 믿음의 표현은 순종입니다. 콜럼버스한인장로교회의 히브리서 11장 8~16절 설교는 참된 믿음은 언제나 행동을 낳는다고 강조하며, 아브라함이 완전한 순종을 시행착오 속에서 배워 갔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3. 믿음의 방향은 본향입니다. 히브리서 11장 9~10절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서도 장막에 거하며 하나님이 지으실 성을 바랐다고 기록합니다.

한계를 넘어선 믿음은 어떤 모습인가요?

한계를 넘어선 믿음은 눈앞의 불가능한 현실보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더 크게 보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은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아브라함은 노년에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붙들었고, 그 믿음은 자신의 나이와 상황이라는 한계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가 문을 두드렸을 때, 그를 위해 기도하던 사람들조차 처음에는 그가 문밖에 서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기도는 하고 있었지만 눈앞의 현실이라는 한계 안에 머물러 있었던 장면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비교해 내가 가진 믿음은 어떤 모습인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유산은 어떻게 이어지나요?

믿음의 유산은 부모와 세대가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다음 세대에 그 신앙을 전할 때 이어집니다.

성경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계보를 보여 주고, 요셉의 삶에서 그 열매가 드러납니다. 열매가 언제 나타날지는 알 수 없지만, 다음 세대와 깊이 있게 대화하며 올바른 믿음을 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실천적 교훈입니다.

흔들리는 일상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일상에 적용하는 방법은 불안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말씀 앞에 하루의 첫 시간을 내어 드리고, 작은 순종부터 실천하는 것입니다.

저는 재발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이 불안했던 시기에 설교를 찾아 듣기 시작했고, 이후 매일 아침 5시 새벽예배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두려움 자체를 없애 주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불안한 마음을 붙들고 혼자 씨름하는 대신, 말씀 앞에 나아가는 규칙적인 시간이 마음의 중심을 잡는 데 큰 평안이 되었습니다.

이 방식은 아브라함이 한 번의 큰 결단이 아니라 여러 번의 걸음으로 순종을 배웠다는 점과 닮아 있습니다.

  • 하루의 첫 시간을 정해 말씀을 읽고 기도합니다.
  • 내려놓기 어려운 것 하나를 정해 하나님께 맡깁니다.
  •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오늘 할 수 있는 순종 하나를 실천합니다.

이렇게 일상 속 수련과 훈련을 꾸준히 이어 가며 삶의 중심을 세우고 싶다면 챌린지 제독수련교실을 통해 함께 실천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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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4장~18장 강해: 성도들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거릴 것인가?

자주 묻는 질문
아브라함의 믿음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신뢰를 순종이라는 행동으로 옮긴 것이 핵심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그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나아갔다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완전히 순종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은 떠났지만 아버지와 조카 롯을 데리고 이동했고, 기근이 왔을 때는 약속의 땅을 떠나 이집트로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순종을 배워 간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이야기는 성경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창세기 11장 27절부터 25장까지 그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고, 히브리서 11장 8~19절과 로마서 4장에서도 믿음의 모범으로 소개됩니다.
믿음과 순종은 어떤 관계인가요?
믿음은 순종의 근거이고, 순종은 믿음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참된 믿음은 행동을 낳는다는 점에서 두 가지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핵심 용어 정리
믿음의 조상
정의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신앙적 모범이 되는 인물로,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하면
믿음을 어떻게 살아내는지 보여 주는 대표 본보기입니다.
순종
정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믿는다는 고백을 실제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본향
정의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바랐던,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고향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행동하는 순종으로 요약되는 믿음의 모범입니다.

아브라함은 목적지를 모른 채 고향을 떠났고, 약속이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보기 전에 먼저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의 믿음은 머릿속의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증명된 행동이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창세기와 히브리서 11장을 중심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불안한 일상을 사는 우리가 그 믿음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 수 있는지 정리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무엇인가요?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근거로 삼고, 그 말씀대로 실제로 행동한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기록합니다. 그는 환상이나 눈에 보이는 증거를 근거로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를 붙들고 떠났습니다. 그래서 성경적인 믿음은 맹목적인 열심이 아니라 말씀에 기초한 신뢰라고 설명됩니다.

아브라함은 왜 고향을 떠나야 했나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먼저 부르셨고, 그 부르심은 익숙한 환경과 의존하던 것들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요청이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 하나님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은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전합니다. 즉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었고,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셔서 그를 불러내셨습니다.

이 여정에 관해 열린교회 김필곤 목사의 히브리서 11장 8~10절 설교는, 아버지 데라가 하란에서 머물자 아브라함도 함께 지체했고, 이후 데라의 죽음을 계기로 다시 부르심이 이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아브라함 역시 처음부터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라, 친척인 조카 롯과 함께 이동하는 등 단계적으로 순종을 배워 갔다는 해석입니다.

아브라함의 여정
아브라함의 여정

아브라함의 믿음이 보여 주는 세 가지 특징

아브라함의 믿음은 말씀에 근거하고, 순종으로 표현되며, 영원한 본향을 바라보는 세 가지 특징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믿음의 근거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약속(창세기 12장 2~3절)을 근거로 움직였습니다.
  2. 믿음의 표현은 순종입니다. 콜럼버스한인장로교회의 히브리서 11장 8~16절 설교는 참된 믿음은 언제나 행동을 낳는다고 강조하며, 아브라함이 완전한 순종을 시행착오 속에서 배워 갔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3. 믿음의 방향은 본향입니다. 히브리서 11장 9~10절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서도 장막에 거하며 하나님이 지으실 성을 바랐다고 기록합니다.

새벽 하늘 아래 장막과 길이 보이는 아브라함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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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를 넘어선 믿음은 어떤 모습인가요?

한계를 넘어선 믿음은 눈앞의 불가능한 현실보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더 크게 보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4장 17절은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을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으로 소개합니다. 아브라함은 노년에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붙들었고, 그 믿음은 자신의 나이와 상황이라는 한계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감옥에서 풀려난 베드로가 문을 두드렸을 때, 그를 위해 기도하던 사람들조차 처음에는 그가 문밖에 서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습니다. 기도는 하고 있었지만 눈앞의 현실이라는 한계 안에 머물러 있었던 장면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비교해 내가 가진 믿음은 어떤 모습인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유산은 어떻게 이어지나요?

믿음의 유산은 부모와 세대가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다음 세대에 그 신앙을 전할 때 이어집니다.

성경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믿음의 계보를 보여 주고, 요셉의 삶에서 그 열매가 드러납니다. 열매가 언제 나타날지는 알 수 없지만, 다음 세대와 깊이 있게 대화하며 올바른 믿음을 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 이 이야기의 실천적 교훈입니다.

흔들리는 일상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나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일상에 적용하는 방법은 불안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말씀 앞에 하루의 첫 시간을 내어 드리고, 작은 순종부터 실천하는 것입니다.

저는 재발에 대한 두려움으로 마음이 불안했던 시기에 설교를 찾아 듣기 시작했고, 이후 매일 아침 5시 새벽예배를 드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두려움 자체를 없애 주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불안한 마음을 붙들고 혼자 씨름하는 대신, 말씀 앞에 나아가는 규칙적인 시간이 마음의 중심을 잡는 데 큰 평안이 되었습니다.

이 방식은 아브라함이 한 번의 큰 결단이 아니라 여러 번의 걸음으로 순종을 배웠다는 점과 닮아 있습니다.

  • 하루의 첫 시간을 정해 말씀을 읽고 기도합니다.
  • 내려놓기 어려운 것 하나를 정해 하나님께 맡깁니다.
  •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오늘 할 수 있는 순종 하나를 실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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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아브라함의 믿음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 신뢰를 순종이라는 행동으로 옮긴 것이 핵심입니다. 히브리서 11장 8절은 그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나아갔다고 기록합니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완전히 순종했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은 떠났지만 아버지와 조카 롯을 데리고 이동했고, 기근이 왔을 때는 약속의 땅을 떠나 이집트로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순종을 배워 간 인물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 이야기는 성경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창세기 11장 27절부터 25장까지 그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고, 히브리서 11장 8~19절과 로마서 4장에서도 믿음의 모범으로 소개됩니다.
믿음과 순종은 어떤 관계인가요?
믿음은 순종의 근거이고, 순종은 믿음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참된 믿음은 행동을 낳는다는 점에서 두 가지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핵심 용어 정리
믿음의 조상
정의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신앙적 모범이 되는 인물로,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하면
믿음을 어떻게 살아내는지 보여 주는 대표 본보기입니다.
순종
정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믿는다는 고백을 실제 행동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본향
정의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사람들이 바랐던, 하나님이 예비하신 하늘의 고향을 뜻합니다.

출애굽기 33장은 참된 신앙은  “감정적 체험이 아니라 교리적 믿음이다. ” 분당한마음개혁교회 신원균 목사님의 주일설교 핵심내용을 정리했습니다.

감정적 체험이 아니라 교리적 믿음이다

1. 두 가지 예배의 대조: 금송아지 예배 vs 회막 예배

출애굽기 32장과 33장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32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고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이는 신을 눈으로 보고, 만지고, 감각적으로 느끼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자의적 예배(인간이 원하는 예배)’입니다. 사람들은 춤추고 즐거워했지만, 하나님은 이 시각적이고 형상적인 예배를 가증히 여기시며 3천 명을 심판하셨습니다.
반면 33장에 등장하는 ‘회막(성막)’은 겉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천막에 불과했습니다. 화려함이나 감각적인 자극은 없었지만,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회막에 나아갔을 때 그곳에 구름 기둥이 임하고 하나님께서 친구처럼 대면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명령하는 ‘규정적 예배’의 위대한 능력입니다.
출애굽기 33:7~11 KRV
7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8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9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10 모든 백성이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문에 서서 경배하며 
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2. 현대 교회의 위기: 감정주의와 체험주의의 함정

오늘날 많은 교회가 예배를 ‘열린 예배’나 ‘찬양 콘서트’ 형태로 바꾸고 있습니다. 성경을 깊이 있게 강해하거나 교리를 배우는 시간은 줄어들고, 감정을 자극하는 찬양과 체험 위주의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죄, 심판, 십자가, 형벌’과 같은 복음의 핵심 용어들은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사라지고, ‘행복, 위로, 상처 치유’ 등 세속적인 헬라 철학의 개념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신원균 목사님은 이러한 현상이 과거 애굽의 단장품을 몸에 걸치고 금송아지 앞에서 뛰놀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감정만 충만해지는 예배, 신비한 종교적 체험만을 쫓는 신앙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으시는 맹목적인 열심은 오히려 신앙을 무너뜨립니다.

3. 여호와의 이름을 안다는 것: 성경과 교리를 통한 만남

모세는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자, 간절히 엎드려 “주의 영광을 보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당신의 얼굴을 직접 보여주시는 대신(얼굴을 보면 죽음), 등을 보여주시며 ‘여호와의 이름’을 반포하십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등짝을 보았다’는 것을 신비주의적인 환상 체험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시각적인 형상으로 자신을 증명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알려주신 것은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출 33:19)”라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성품이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깊이 만난다는 것은 환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속성(무한, 불변, 영원, 자비, 공의 등)을 교리적으로 바르게 배우고 깨닫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12~23 KRV
12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나더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13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컨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 
14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케 하리라 
15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16 나와 주의 백성이 주의 목전에 은총 입은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심으로 나와 주의 백성을 천하 만민 중에 구별하심이 아니니이까 
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말하는 이 일도 내가 하리니 너는 내 목전에 은총을 입었고 내가 이름으로도 너를 앎이니라 
18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22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4. 결론: 참된 믿음은 교리적 진리 위에 세워집니다

기독교는 신비한 환상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가르치듯,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계시하신 모든 것이 진실하다는 것을 아는 지식”과 “성령께서 복음을 통해 주시는 굳건한 확신”입니다.
WCC나 자유주의 신학이 외치는 ‘정의, 평화, 도덕’이라는 인간 중심의 율법주의나, 신사도 운동과 같은 감정적 신비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딱딱하고 지루해 보일지라도, 한 시간씩 선포되는 강해 설교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같은 전통적인 교리 교육을 사랑할 때,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영혼이 참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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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왜 하나님은 모세에게 당신의 얼굴이 아닌 ‘등’만 보여주셨나요?
A. 죄인인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본질(얼굴)을 직접 보고 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출 33:20). ‘등’을 보여주셨다는 것은 시각적인 형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해 주신 만큼만(희미하게나마) 그분의 성품과 뜻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Q2. 신원균 목사님이 지적하는 현대 교회 예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A. 교회의 강단에서 성경 강해와 교리 교육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감정을 자극하는 긴 찬양, 시각적 체험, 그리고 ‘죄와 회개’ 대신 심리적 위로만 전하는 인본주의적 메시지가 차지한 것을 지적합니다. 이는 성경적 예배가 아닌 쾌락을 쫓는 ‘금송아지 예배’와 같다는 것입니다.
Q3. 목사님께서 강조하시는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A. 밤새 기도하다가 환상을 보거나 짜릿한 감정적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속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신칭의)을 바르게 ‘알고(지식)’, 성령 안에서 그 말씀이 진리임을 굳게 ‘확신’하며 살아가는 교리적 신앙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