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를 읽다 보면 깊은 의문이 생기곤 합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다윗은 나단 선지자의 지적에 즉각 회개했고, 하나님은 분명 그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결국 죽음을 맞이해야 했을까요? 이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원균 목사님의 개혁주의에 기초한 구약성경해설 함께 읽으며 저는 좀 더 빠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죄론(원죄와 자범죄)과 구원론(칭의와 성화)을 구별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칭의(원죄)와 성화(자범죄)의 구별
성경적인 죄론을 이해하려면 죄의 종류와 용서의 방식을 구별해야 합니다.
원죄와 칭의: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근본적인 죄의 씨앗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칭의를 통해 이 원죄를 단번에 용서받으며, 지옥의 영원한 형벌로부터 사면을 받습니다. 이는 단 한 번 일어나는 영구적인 사건입니다.
자범죄와 성화: 신자가 된 이후에도 살아가면서 짓게 되는 생활 죄입니다. 이는 매 순간 회개하며 성화의 과정을 통해 용서받아야 합니다. 다윗이 범한 간음과 살인은 바로 이 자범죄에 해당합니다.
사무엘하 12장 13절~14절 개역한글(KRV) 버전 13: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14: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하고
2. 죄의 용서와 남겨진 ‘죄의 열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선지자 앞에 엎드려 즉각적으로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보시고 즉각적으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자범죄의 특성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회개하여 죄의 용서는 받지만, 그 범죄가 낳은 ‘결과와 열매’까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배상과 책임: 누군가에게 상해를 입혔다면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과 별개로 병원비를 물어주어야 합니다. 투기를 하다 전 재산을 잃었다면, 회개하더라도 잃어버린 돈이 돌아오지는 않으므로 평생 그 가난의 결과를 짊어져야 합니다.
다윗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간음을 통해 아이가 태어났고, 그로 인해 사탄에게 빌미를 주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용서는 받았으나, 이 땅에서 벌어진 죄의 결과적 책임은 본인이 감당해야만 했습니다.
다윗의 회개
3. 신학적 해석: 칭의의 경고인가, 성화의 징계인가?
아들의 죽음을 두고 로마 카톨릭과 개혁주의는 해석의 차이를 보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관점 (칭의적 접근): 이 사건을 구원(칭의)과 연결하여 해석합니다. 다윗이 심각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지옥에 갈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구원이 취소될 수 있다는 본보기로 아들을 죽이셨다고 봅니다.
개혁주의의 관점 (성화적 접근): 구원(칭의)이 취소될 수 있다는 경고가 아닙니다. 다윗은 메시아의 혈통을 이어갈 구약의 핵심적인 왕이었습니다. 따라서 평생 두 번 다시 이런 끔찍한 죄를 품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그를 영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내리신 엄위한 성화적 징계입니다.
4.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다윗의 반응
이 사건에서 돋보이는 것은 고난과 섭리를 대하는 다윗의 태도입니다.
간절한 기도: 아이가 병들었을 때 다윗은 금식하며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이는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고통 앞에서 질병의 치유를 구하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정당한 본능이자 간구입니다.
섭리에 대한 순복: 하지만 결국 아이가 죽어 하나님의 뜻이 확정되자, 다윗은 훌훌 털고 일어나 몸을 씻고 음식을 먹습니다. 치유해주실지 거두어 가실지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분의 주권적인 결정이 내려진 후에는 원망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성숙한 신앙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사무엘하 12장 20절~23절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21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22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23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수용하는 장면
결론
다윗의 아들이 죽은 사건은 하나님의 변덕이나 구원의 취소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용서받은 신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서운 열매(자범죄의 결과)는 책임져야 한다는 성화의 엄중함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심각한 죄에 빠지지 않도록 늘 경성해야 하며, 만약 넘어졌다면 핑계 대지 않고 신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또한, 어떠한 결과가 주어지든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다윗의 영적 성숙함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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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분당한마음 개혁교회 신원균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사무엘하 12장 의 원죄와 자범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가 저지른 죄, 즉 자범죄의 무서운 열매는 책임져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지금부터라도 자범죄는 십계명의 기준에 따라 늘 생각하고 판단하여 겸손하게 행동해야 함을 묵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