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필사란 유교의 대표적 고전인 공자의 언행록 《논어》의 원문이나 한글 해석을 손으로 직접 베껴 쓰는 가장 느린 독서법이다. 눈으로 훑으면 몇 분이면 끝나는 한 장(章)도 손으로 옮겨 적으면 한 글자 한 글자에 머물게 된다. 정보를 빨리 소화하는 데 지친 사람에게 필사는 속도를 일부러 늦춰, 생각이 따라올 자리를 만들어 주는 방법이다.

정보는 넘치는데, 왜 마음은 더 조급해질까

스크롤 몇 번이면 수십 편의 글이 지나간다. 그런데 하루가 끝나면 무엇을 읽었는지 선명하게 남는 것은 드물다. 빠름만 강조되는 시대에는 읽었다는 사실과 이해했다는 느낌 사이의 간극이 점점 벌어진다. 깊이 생각할 시간이 사라지니 마음은 더 조급해지고, 조급한 마음은 다시 더 빠른 정보를 찾게 한다.

이 순환을 끊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속도를 낮추는 것이다. 느린 독서, 그중에서도 손으로 옮겨 적는 필사는 한 문장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멈추게 만든다.

눈으로 읽는 것과 손으로 쓰는 것은 무엇이 다를까

손으로 쓰는 행위가 뇌에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 보여 주는 연구가 있다. 노르웨이 과학기술대(NTNU) 오드리 판데르 메이르 교수팀은 대학생 36명이 화면에 나타난 단어를 손으로 쓰거나 키보드로 입력하는 동안 뇌파(EEG)를 측정했다. 256개의 센서로 분석한 결과, 손으로 쓸 때의 뇌 연결 패턴이 키보드로 타이핑할 때보다 더 정교했다. 연구팀은 펜을 쓰며 손을 정밀하게 제어할 때 얻는 시각·동작 정보가 학습을 돕는 뇌 연결에 기여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읽을 때 정확히 알아 둘 점이 있다. 이 실험은 디지털 펜으로 터치스크린에 단어를 쓰게 한 연구이고, 종이에 쓸 때도 비슷할 것이라는 부분은 연구팀의 예상이다. 《논어》를 필사했을 때의 효과를 직접 검증한 연구는 아니다. 그러니 “손글씨가 뇌 활동의 질을 다르게 만든다는 근거가 있다”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정확하다.

한 자 한 자 베껴 쓰며 생각이 깊어진다

나는 4대 성인을 공부하며 《논어》를 필사했다. 한 자 한 자 베껴 쓰고, 모르는 한자는 찾아 익혀 가며 써 내려갔다. 그러다 보면 글자를 옮기는 일이 어느새 질문으로 바뀌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 내 삶에는 이 말을 어떻게 적용할까, 그리고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자격은 무엇인가.

[경험 삽입: 필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 느꼈던 감정과, 펜을 꾹 눌러 적으며 얻은 개인적인 깨달음]

공자는 이 균형을 이렇게 말했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논어》 위정편)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필사는 이 두 가지를 한 자리에서 오가게 한다. 원문을 정확히 옮기는 동안은 ‘배움’에, 옮겨 적은 문장을 내 상황에 비추어 보는 동안은 ‘생각’에 머문다.

저는 논어를 필사할 때 제1편 학이편에 나오는 배울 학(學)이라는 學(학) 자는 늘 제게 큰 울림을 주는 글자 입니다. 배움이란 무엇인가? 나는 오늘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결과적으로 은퇴 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게 되었고 정신적으로 계속 성장을 해 나가게 합니다. 

필사에서 한 걸음 더: 리더의 자리에서 던지는 세 가지 질문

논어 필사를 글씨 연습이나 지식 암기로만 끝내면 아쉽다. 필사한 문장 아래에 질문 하나를 덧붙이면 같은 구절이 전혀 다른 깊이로 읽힌다.

  1. 이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문장 속 인물의 자리에 나를 세워 본다.
  2. 지금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까? 오늘 하루, 오늘 만날 사람 앞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지로 좁힌다.
  3.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자격은 무엇인가? 직책이 있든 없든,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자리에서 나를 점검한다.

《논어》에는 이 질문과 맞닿은 구절이 여럿 있다. 증자는 날마다 자신을 세 가지로 돌아본다고 했고(吾日三省吾身, 학이편), 공자는 어진 이를 보면 같아지기를 생각하고 그렇지 못한 이를 보면 안으로 스스로를 살피라고 했다(見賢思齊焉 見不賢而內自省也, 이인편).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으면 군자 아니겠느냐는 말(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학이편)도 조급한 마음을 다스리는 문장으로 읽힌다.

논어 필사, 이렇게 시작해 보세요

거창한 준비는 필요 없다. 아래 순서는 하나의 제안이며, 자신의 속도에 맞게 바꿔도 된다.

  1. 한 장만 고른다. 처음에는 《논어》 첫머리인 학이편 1장처럼 짧고 익숙한 구절이 좋다.
  2. 소리 내어 한 번 읽는다. 원문과 음을 입에 익힌다.
  3. 원문을 천천히 쓰고 한글 해석을 옆에 적는다. 모르는 한자는 사전을 찾아 뜻을 확인한다.
  4. 질문 한 줄을 덧붙인다. 위의 세 가지 질문 중 오늘 와닿는 하나를 고른다.
  5. 분량보다 지속을 본다. 하루 10~15분, 한 구절이어도 꾸준히 이어 가는 편이 낫다.

논어 필사 자주 묻는 질문

Q. 논어 필사를 하면 어떤 점이 좋나요?

빠르게 지나가던 문장 앞에서 멈추게 되고, 한자를 익히며 원문을 정확히 읽게 됩니다. 여기에 질문을 덧붙이면 고전의 말을 내 상황에 비추어 보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 됩니다.

Q. 손글씨 필사가 기억력에 도움이 되나요?

손글씨가 키보드 타이핑보다 뇌 연결 패턴을 더 정교하게 만든다는 뇌파 연구는 있습니다. 다만 그 연구가 필사 자체나 기억력 향상을 직접 입증한 것은 아니므로, 기억력 효과를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Q. 하루에 논어 몇 구절씩 필사하는 것이 좋은가요?

정해진 기준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한 구절 또는 한 장으로 시작하고, 쓴 뒤 생각하는 시간까지 포함해 하루 10~15분 정도를 꾸준히 이어 가는 방식을 권합니다.

Q.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군자는 학덕을 갖추고 스스로를 닦아 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논어》는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고 배움을 이어 가는 모습에서 그 일면을 보여 줍니다.

결론: 논어 필사는 고전의 지혜를 내 안에 들이는 길

논어 필사는 단순한 글쓰기가 아니라 고전의 지혜를 내면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손으로 천천히 옮겨 적고, 그 문장 앞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쌓이면 조급했던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더 깊이 있는 배움과 체계적인 자기 수련을 원한다면 다음 단계로 이어 가 보자.

제독수련 중급과정 바로가기

같이 읽으면 좋은 글 추천

논어 제1편 학이(學而) 1.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참고 자료

논어 제1편 학이(學而)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은가”이다. 저는 이 글 귀에서 배움의 기쁨, 친구란 나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으로 만나면 즐거울 것이고 리더의 자격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여러분이라면 필사하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1.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울학 말이을이 때시 익힐습 갈지 아닐불 또역 기쁠열 어조사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2.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있을유 벗붕 스스로자 멀원 모방 올래 아닐불 또역 즐거울낙 어조사호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3.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사람인 아닐부 알지 말이을이 아닐불 성낼온 아닐불 또역 임금군 아들자 어조사호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은가

논어 제1편 학이
논어 제1편 학이

 

之(지):’ “가다’, 의 등 여러가지 의미로 쓰이지만 이 글에서는 ‘그것’이라는 의미의 대명사로 쓰였다.

說(열): ‘이야기하다’는 뜻의 ‘설(說)자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는 ‘기쁘다’는 뜻의 ‘열(悅)과 통용된다, 그래서 음도 悅과 같이 ‘열’이다

不亦···乎(불역···호): ‘또한 ···하지 않은가? 라는 의미의 강조 표현이다. 기쁘고 즐겁고 군자다운 일들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이것이야말로 그러한 일이 아니냐는 뜻이다.

有(유): ‘어떤’정도의 의미로 해석하거나, 특별한 뜻이 없이 말을 부드럽게 하는 조음소로 보기도 한다, ‘먼 곳에서 찾아오는 벗이 있으면’이라고 해석할수도 있다.

自···(자···): ···으로부터

樂(락): ‘즐겁다’의 뜻, 앞의 說(열)이 좀더 내면적이고 깊은 기쁨이라면, 樂은 이에 비해 좀 외면적이고 가벼운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人(인): 일반적으로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타인; ‘나’이란 풀이가 우리말의 어감에 더 가깝다.

慍(온): 성내다, 원망하다.

  1. 孔子(공자): 원문의 ‘자’ (子)이다. ‘자’는 성 아래 붙여 남자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한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라서 국이 ‘공선생님’ (孔子)이라는 표현 대신에 ‘선생님(子)이라고 썼다. 그러므로 <논어>에서 보이는 ‘자왈(子曰)이란 것은 모두 ‘공자(공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라는 뜻이다.
  2. 시(時): 원문은 시(時)이다, ‘때때로’라고 번역하였지만 ‘가끔’이나 ‘시간 날 때’의 의미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반복 학습하여 익힌다’는 뜻의 ‘습(習)이라는 단어와 결합되어 있는 이 문맥에서는 ‘배운 것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수시로 반복하여 익힌다’로 이해해야 한다.
  3. 원문은 ‘군자(君子)이다. 군자는 유학에서 학문과 수양을 통해 인격적 완성도에 이른 사람을 말하는 가장 일반적인 명칭이다. 굳이 단계 구분을 해본다면 최고의 단계가 성인( 聖人), 그 다음이 현인(賢人), 그 다음이 군자이지만 이들을 통틀어 군자라고도 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이보다 못한 사람이 바로 소인(小人)이다. 여기서는 문맥상 ‘군자답다’라는 형용사로 풀었다.

<오늘의 한자>

學 배울 학

而 말이을 이

時 때 시

習 익힐 습

之 갈 지

不 아닐 불

亦 또 역

悅 기쁠 열

乎 어조사 호

생각거리

1. 배움이란 무엇인가?

2. 나를 따르는 사람이 있는가?

3. 군자를 오늘날 리더라고 생각하면 내가 생각하는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추천

 

공자는 반복적인 책 읽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

위편삼절(韋編三絶) 은 공자가 <주역>을 즐겨 읽어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고사성어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 시대에는 대나무에 글을 쓰고 가죽 끈으로 묶어 책을 만들었다.

​

얼마나 많이 읽었으면 가죽 끈이 닳아서 끊어졌을까. 공자는 반복적인 책 읽기로 자신의 운명을 바꾼 인물이다. 그는 천한 신분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최고의 관리자가 되었으며 후대에 길이 남을 성인(聖人)이 되었다.

​

공자는 후처의 몸에서 나온 서자였다. 세 살때 공자의 부친이 죽으면서 집안이 더욱 어려워져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책 읽는 데 관심을 두었고 공부를 즐겨했다. 그는 스스로 학문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천한 신분의 공자는 관직에 나아가 초기 곡물 출납을 관리하고 가축을 기르는 말단 관리로 근무하다 50대에는 노나라의 재판관이며 최고직인 대사구가 되었다. 그를 따르는 제자가 3,000명이 되었고 그 가운데 뛰어난 제자가 72명이나 있었다.

​

공자는 마침내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성인이 되었다. 다산도 성인 중에서도 공자보다 더 성대한 사람은 없다고 극찬했을 정도다. 성인은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사람이다. 공자가 춘추 전국 시대를 뛰어넘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평생을 노력해 온 책읽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의 제자들이 펴낸 논어는 여전히 널리 읽히고 있는 스테디셀러로 우리에게 주옥같은 삶의 지혜를 전해주고 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울학 말이을이 때시 익힐습 갈지 아닐불 또역 기쁠열 어조사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있을유 벗붕 스스로자 멀원 모방 올래 아닐불 또역 즐거울낙 어조사호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사람인 아닐부 알지 말이을이 아닐불 성낼온 아닐불 또역 임금군 아들자 어조사호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면 군자답지 않은가

​

之(지):’ “가다’, 의 등 여러가지 의미로 쓰이지만 이 글에서는 ‘그것’이라는 의미의 대명사로 쓰였다.

說(열): ‘이야기하다’는 뜻의 ‘설(說)자로 많이 쓰이지만 여기서는 ‘기쁘다’는 뜻의 ‘열(悅)과 통용된다, 그래서 음도 悅과 같이 ‘열’이다

​不亦···乎(불역···호): ‘또한 ···하지 않은가? 라는 의미의 강조 표현이다. 기쁘고 즐겁고 군자다운 일들이 여러 가지 있겠지만 이것이야말로 그러한 일이 아니냐는 뜻이다.

​有(유): ‘어떤’정도의 의미로 해석하거나, 특별한 뜻이 없이 말을 부드럽게 하는 조음소로 보기도 한다, ‘먼 곳에서 찾아오는 벗이 있으면’이라고 해석할수도 있다.

自···(자···): ···으로부터

​樂(락): ‘즐겁다’의 뜻, 앞의 說(열)이 좀더 내면적이고 깊은 기쁨이라면, 樂은 이에 비해 좀 외면적이고 가벼운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人(인): 일반적으로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타인; ‘나’이란 풀이가 우리말의 어감에 더 가깝다.

​慍(온): 성내다, 원망하다.

​​1. 孔子(공자): 원문의 ‘자’ (子)이다. ‘자’는 성 아래 붙여 남자에 대한 존칭으로 사용한다.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라서 국이 ‘공선생님’ (孔子)이라는 표현 대신에 ‘선생님(子)이라고 썼다. 그러므로 <논어>에서 보이는 ‘자왈(子曰)이란 것은 모두 ‘공자(공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이라는 뜻이다.

​2. 시(時): 원문은 시(時)이다, ‘때때로’라고 번역하였지만 ‘가끔’이나 ‘시간 날 때’의 의미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반복 학습하여 익힌다’는 뜻의 ‘습(習)이라는 단어와 결합되어 있는 이 문맥에서는 ‘배운 것을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수시로 반복하여 익힌다’로 이해해야 한다.

​3. 원문은 ‘군자(君子)이다. 군자는 유학에서 학문과 수양을 통해 인격적 완성도에 이른 사람을 말하는 가장 일반적인 명칭이다. 굳이 단계 구분을 해본다면 최고의 단계가 성인( 聖人), 그 다음이 현인(賢人), 그 다음이 군자이지만 이들을 통틀어 군자라고도 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이보다 못한 사람이 바로 소인(小人)이다. 여기서는 문맥상 ‘군자답다’라는 형용사로 풀었다.

 

​<한자 익히기>

學 배울 학

而 말이을 이

時 때 시

習 익힐 습

之 갈 지

不 아닐 불

亦 또 역

悅 기쁠 열

乎 어조사 호

※ 오늘의 생각거리

​1. 배움이란 무엇인가?

2. 나를 따르는 사람이 있는가?

3. 군자를 오늘날 리더라고 생각하면 내가 생각하는 리더란 어떤 사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