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82학번입니다. 대학교 다닐 때 교수님들이 수업에 들어오시면 제일 먼저 출석을 부르십니다. 내 이름을 부를때면 이름을 부르신 후 안용화의 ‘화(㳸)’자가 무슨 화자예요? 라고 물으십니다. 그럴 때마다 급우들은 ‘물 맑을 화’라고 합창을 합니다. 교수님들의 출석 부르기로 저희 반 친구들은 내 이름의 화(㳸) 자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이 만 번 불리면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래서 물 맑을 화(㳸)라고 40명의 급우들이 일제히 말하면 나는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내 이름은 할아버지께서 지어 주셨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용(鏞)자를 돌림으로 용선, 용원, 용화, 용인, 용만입니다. 사촌들은 용숙, 용옥, 용환, 용덕… 입니다. 사촌들 이름까지 모두 할아버지께서 지어 주셨습니다.
당시 제가 갖고 있던 옥편에서 제 이름의 화자를 찾아보았는데 ‘물 맑을 화(㳸) 자는 없는 한자였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할아버지를 뵈러 가서 제 이름의 한자가 옥편에 없는데 어떻게 지으신 거예요? 라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가지고 계신 옥편을 보여주시면서 ‘물 맑을 화(㳸)’자를 보여주셨습니다. 겉표지가 까만 옥편에는 물 맑을 화(㳸) 자가 정말로 보였습니다. ‘진짜 물 맑을 화(㳸)자가 있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할아버지께서는 “물이 맑은 것처럼 늘 인생을 맑고 정직하게 살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벽장에 있던 쿰쿰한 냄새가 났던 옥편은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뒤에 작은아버지께 그 옥편을 달라고 졸랐는데 주시지 않았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몇 년 뒤 작은아버지께서는 사시던 집 길 건너편에 새로 집을 지으셨다고 합니다. 새로 지으신 작은아버지댁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습니다. 작은아버지께서 그 옥편을 꼭 가지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올가을에는 작은아버지 댁을 방문하여 작은엄마도 뵙고 내 이름에 들어간 물 맑을 화(㳸)자가 적힌 옥편을 꼭 갖고 싶다고 작은아버지께 말씀드려 만약에 주시면 그 옥편을 간직하겠습니다.
오늘 아침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화자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끝부분에 뜻이 없는 한자로 ‘물 맑을 화(㳸)’가 보여서 신기했습니다. 그동안 이름을 한자로 문서에 쓸 때 물 수(氵)와 꽃 화(花)를 장평 90%로 줄이고 자간 –50%로 글자 간격을 줄여서 물 맑을 화(㳸) 자를 만들어서 사용했습니다.
안용화(安鏞㳸) 이름 석 자를 오랜만에 한자로 쓰면서 할아버지댁에서 보낸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려봅니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댁에서 살았습니다. 이불 펴고 여섯 식구가 누우면 꽉 찬 단칸방에서 막내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 나는 할아버지댁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농사를 지으셔서 칠 남매를 키우셨습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에 일어나시면 소죽부터 끓이셨습니다. 저도 할아버지를 따라 일어났습니다. 소죽 끓이는 할아버지 옆에 쪼그리고 앉아 불이 꺼지지 않게 장작을 넣기도 했습니다. 어둠이 걷히고 바람이 많이 부는 가을엔 여기저기서 후드득 후드득 떨어지는 돌배들을 주웠습니다. 툭툭 떨어져 터진 돌배는 주워서 상할까 봐 제일 먼저 먹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농사짓던 밭에는 대추나무, 밤나무가 한그루씩 있었습니다. 탱글탱글한 빨간 대추를 따서 입 속에 쏘옥 넘으면 단맛이 입안 가득 퍼졌습니다. 알밤이 떨어질 때면 도랑을 지나고 밭둑을 지나 혼자 밤을 주우러 갔습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겨울에 군불을 화로에 담아 방에 두십니다. 화로에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하고 몰래 밤을 굽다가 불꽃이 있는 재가 탁탁 사방으로 튀어 오르기도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불이 날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며 밤껍질에 칼집을 넣어 밤을 구워주셨습니다. 뒷산에는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는데 긴 장대 끝에 그물주머니를 감아 할아버지와 삼촌은 하나씩 하나씩 감을 따셨습니다. 그 감들을 할머니께서 깎고 할아버지께서는 짚을 꼬아 만든 새끼줄 사이 사이에 감을 넣어 처마 밑에 매달아 주십니다. 햇빛과 바람이라는 마술의 시간이 지나면 분이 하얗게 핀 곶감이 됩니다. 할머니께서는 나머지 감들을 다락 방에 펼쳐놓으십니다. 할머니는 곶감, 익은 감들을 시장에 내다 파셨습니다. 곶감은 설에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다락방에서 익어가는 감은 할머니께서 주실 때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물이 많고 달콤한 감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과일이었습니다. 물이 많고 무척 달았던 할아버지 댁 감 맛을 그 후론 한 번 정도 먹어보고 그 맛과 비슷한 것을 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 겨울에 먹는 대봉감도 익으면 껍질도 두껍고 약간 텁텁하기도 하고 물이 많지 않습니다. 5일마다 열리는 단양 장날이면 할아버지를 따라 엄마가 계시는 단양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여동생은 내가 집에 가면 “너희 집에 가라”라고 나를 구박했습니다. 난 울며 할아버지를 따라 다시 할아버지 댁으로 가곤 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았습니다. 남동생하고 4살 차이니 4년은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의 기억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입니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그 위에서 저녁 밥으로 찐 옥수수, 찐 감자를 먹었습니다. 특히 찐 감자 위에 할머니가 당원을 넣고 쪄 주신 밀가루 빵은 쫄깃쫄깃하고 참 맛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장에 가신 날은 어둑어둑해지면 할머니께서 ‘저 대문 안으로 언제 오실까?’ 하며 기다리다 늦게 오시면 큰길까지 마중을 나가기도 했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커서 할아버지, 할머니 제주도 여행 꼭 보내드릴게요”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워킹맘으로 36년을 살았습니다. 큰아들이 아기였을 때 나는 새벽에 일어나 젖병 삶고 기저귀, 옷, 간식 등을 챙기고 아이가 일어나면 밥을 먹여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아이를 돌봐주는 아주머니께서 집으로 데리러 오셨는데 아주머니가 아들을 업고 함께 집을 나서다가 갈림길에 다다르면 아들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기 시작합니다. 나도 울음을 삼키면서 직장에 갔던 일들이 생각납니다. 퇴근 후 아주머니댁으로 가면 대문 앞에서 큰아들은 나를 기다리고 서 있었습니다. 이제 그런 아들이 결혼하여 어엿한 쌍둥이 아빠가 되었습니다.
막내아들은 고등학교 때 내가 싸준 김밥이 제일 맛있었고 친구들도 맛있다고 하며 그 김밥이 가끔 먹고 싶다고 합니다. 막내아들도 이번 주 일요일에 결혼합니다. 내일 아들이 집에 오면 미나리를 듬뿍 넣은 김밥을 싸주어야겠습니다.
지금도 새벽 4시면 자연히 일어나집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할아버지와 함께 보내면서 일찍 일어났던 습관은 지금 생각하니 세상을 살아가는데 좋은 습관이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따라 일찍 일어났던 습관 덕분에 가정생활, 직장생활도 잘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의 1시간은 밤의 3시간에 필적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잠에서 깨어 무의식이 이완된 나를 교육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은 아침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럴 때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을 먼저 합니다. 2년 전 퇴직한 나는 아침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쓰고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입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어주신 이름과 일찍 일어났던 습관은 할아버지께서 주신 소중한 유산이었습니다. 할아버지 덕분에 아침에 준비할 것이 많은 나는 두 아들을 잘 키워낼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감사합니다.
매일 걷는 산책길에 아름드리 돌배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배꽃을 보면 검게 탄 얼굴에 유독 하얀 이를 보이며 미소를 짓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4월이 되어 하얀 배꽃이 피면 할아버지가 더욱 보고 싶습니다. 오늘 새벽에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을 한자로 써 보면서 ‘너는 맑은 물처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고 있니?’라고 나에게 가만히 물어보았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반성합니다.’ 앞으로는 할아버지의 뜻을 담아 지어주신 내 이름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