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목차

아버지의 100세 건강법

 

아버지의 100세 건강법

아버지는 올해 아흔둘입니다. 아버지의 친구분들은 거의 다 돌아가시고 남은 친구들 몇 분은 입원해 있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해 주셨어요. 아버지는 집에서 2㎞ 떨어진 성당에 다니시는데 주일에 예배드리러 걸어 다니십니다. 대상포진으로 오랫동안 약을 드셨고 이가 거의 썩어 몇 개 남은 치아로 오물오물하며 조금씩 음식을 드십니다. 임플란트는 안 하신다고 하셨어요.

저는 2년 전 겨울, 우연히 아버지께서 상조보험에 가입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조보험은 상조(喪助) 때 보통 자식들이 부모님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가입합니다. 언니가 부모님 상조보험에 가입했다고 해서 나는 들지 않았습니다.

상조보험은 본인이 사용해야 하므로 찾아서 여행 등 필요한 곳에 쓰시라고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본인의 장례 준비로 보험을 들어놓으셨다고 하셨습니다. 보험증서를 보니 만기가 몇 달 남지 않았습니다. 꼭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고 싶으면 제게 계약자 변경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계약자를 변경하기 위해 아버지께서는 단양에서 원주까지 기차를 타고 오셨습니다. 모시러 간다고 했는데 극구 사양하셨습니다. 원주에는 원주역과 서원주역 두 개의 기차역이 있습니다. 기차 도착시간에 맞춰 서원주역에서 아버지를 기다렸습니다. 기차가 도착한 후 사람들은 다 역으로 나왔지만,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와 계속 통화하면서 찾으러 다니는데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곳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께 옆에 누가 있으면 전화 좀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그분과 통화하고 나서 아버지가 원주역에 계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앉아서 편히 기다리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서원주에서 원주역까지 자동차로 30분 거리인데 1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원주역을 남원주로 이전해서 남원주역으로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출발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곳은 남원주 요금소였습니다. 뒤따라오는 차들 때문에 할 수 없이 요금소로 진입하였습니다. 신림 요금소에서 되돌아와야 하나. 북원주로 요금소로 되돌아와야 하나 망설이다 북원주 요금소를 선택했습니다. 요금은 계산되지 않았습니다. 원주에서 29년을 살았는데 원주가 이렇게 크다니, 원주의 동서남북을 자동차로 운전하며 잠시 생각했었습니다. ‘직접 단양으로 모시러 갈 것을, 미리 원주역을 검색하고 출발했다면, 남원주역이 아니라 원주역이란 명칭을 정확히 알았더라면, 아버지를 낯선 곳에서 그리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운전 도중 중간중간 전화를 드렸지만, 아버지가 걱정되었습니다. 드디어 기차가 서원주역에 도착한 지 한 시간 만에 원주역에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면서 저를 반겨주셨습니다. 그렇게 환하게 웃으시는 아버지의 얼굴, 지금도 겨울에 한 시간 동안 나만 기다리며 서 계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면 코끝이 찡합니다. 아버지의 상조보험은 이제 만기가 되었습니다. 엄마의 상조보험도 아버지께서 가입해 놓으셨습니다. 당시 납부 기간이 반 정도 남아 있었습니다. 현재 엄마의 상조 보험금은 제가 매달 납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늙어 자식에게 짐이 되시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자신의 장례 보험 및 엄마의 장례 보험까지 가입해 놓은 것입니다. 돌아가신 뒤까지 준비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나의 앨범에는 단양면사무소 앞에서 여동생이랑 같이 찍은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찍어주신 사진입니다. 어렸을 때 나는 아버지가 무척 무서웠습니다. 어느 날 술을 드시고 온 날에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아버지께 뺨을 한 대 맞아 가슴이 쪼그라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후론 아버지가 정말 무서웠습니다. 아버지가 상수도 사무실에서 숙직하실 때 그곳까지 걸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집에서 2㎞ 되는 거리였는데 혼자서 걸어갔습니다. 아버지는 여기까지 저녁에 무엇 하러 왔느냐고 얼른 집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근무하시는 곳이 궁금해서 갔는데 숙직하시는 곳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온 날, 기분이 좋으시면 내 귀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고향 무정’ 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잠시 후 아버지의 지갑에서는 돈이 술술 나왔습니다. 저는 그때가 저는 제일 좋았습니다. 밤새 행복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은 모두 반납이었지만요.

아버지 덕분에 당시 부사라는 귀한 사과도 많이 먹었습니다. 국광도 맛있었지만, 부사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우리가 바나나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바나나를 사 오셨습니다. 전 그때 잔뜩 기대했던 바나나의 맛을 보고 노란 바나나는 정말 맛이 이상하여 실망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과일을 잘 사다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필체가 좋으셨고 피부도 하얗고 깨끗하셨습니다. 결혼식 사진을 보니 조각 같은 미남이셨습니다. 친정집 벽에 걸린 결혼사진을 보며 친정 갔을 때 엄마 어디가 좋아서 결혼하셨느냐고 여쭈어보았습니다.

” 이뻤어, 내가 군산에서 하숙하고 있을 때 한눈에 반했지.”

왜 군산에서 하숙하셨어요?

“1950년대는 지금의 군 복무 대신 나는 간첩 잡는 일을 했단다. 당시에는 정말 간첩이 많았다.”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말씀을 들으니 요즈음 대한민국이 1950년대와 나라가 똑같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버지 별명은 ‘일본 순사’라고 엄마가 말씀해 주셨어요. 아버지께서는 40대에 “재떨이 치워라.”라는 말씀 하나로 담배를 끊으셨습니다. 저는 남자들이 담배를 끊는 것이 쉽다고 생각했으나 나의 착각이었습니다. 남편은 여태 그 독한 담배를 끊지 못합니다. 아버지께서는 건강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40대에 신앙생활 시작하기, 담배 끊기, 술 절제하기, 걸어 다니기, 자주 목욕하기, 텃밭에 채소 가꾸어 먹기, 소식(小食), 잠 충분히 자기 등 몸에 좋은 것만 실행에 옮기시는 분이셨습니다. 자식들에게 피해 가지 않게 본인의 건강을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셨습니다.

​ 아버지께서는 성당에 다니시면서도 제사를 지내셨습니다.

“아버지는 성당 다니시는데 왜 제사를 지내셨어요?”라고 그 이유를 여쭤보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내가 장남이잖아”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엄마 나이 87세까지 집안 3대 제사를 지내셨습니다. 엄마는 올해 89세로 작년에 방광암이 재발하여 자연 의학으로 치료하고 계십니다. 이제 제사는 지내지 않으십니다. 요즘 아버지께서는 어머니께 목뼈 큰돌기 두드리기를 하루에 두 번 꼭 해주신다고 엄마가 자랑하셨습니다. 엄마가 속옷을 벗어 놓으시면 아버지께서 얼른 빨아 너신다고 합니다. 엄마는 아버지께서 젊어서는 속을 썩였는데 지금은 아버지가 최고라고 하십니다.

‘자식은 다 부모에게 관심 없지요. 부부 백년해로하세요.’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위해 매일 기도해 주십니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에게 한 번도 듣지 못한 말은 ‘사랑한다.’였습니다.

듣지 못한 말이 아니라 늘 내게 “너를 위해 기도한다’라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 주신 걸 나는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엄마와 나는 매일 문자 메시지로 대화를 주고받고 전화로 엄마의 건강 상태를 묻습니다. 오늘 통화했을 때 마침 엄마는 아버지로부터 목뼈 큰돌기 두드리기를 받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바꿔줄게.”

엄마가 아버지께 전화기를 드리자 나는 ‘좋은 기회다’라고 생각하고 용기 내어 이렇게 말씀드렸어요.

“엄마에게 매일 안마를 해 주셔서 감사해요. 아버지 사랑해요!”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버지께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 무려 60년이 걸렸습니다. 이제는 쉽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표현해야겠습니다. 부모님께도, 내 가족에게도.

요즘 저는 부모님과 소통하며 부모님의 넓고 깊은 마음을 알게 되면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의 생각과 행동은 아버지를 오래도록 장수하게 하시는 비밀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 40대에 생각을 바꾸시고 실천하신 신실한 신앙생활, 건강을 위한 절제력, 결단력,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만 실천하셨던 것들이 장수의 비결임을 알았습니다. 나는 건강을 위해 해마다 봄, 가을에 단식합니다. 올해 첫 단식을 마음먹고 시작해야겠습니다. 저는 10년 전부터 자연 의학을 배워 건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합니다. ‘정장 정혈’과 ‘척주 바르게 하기’는 자연 의학의 큰 기둥입니다. 비만은 건강의 적입니다.​

건강을 1순위로 생각하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니 문득 미국의 사상가 사무엘 스미스의 말이 떠오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인생이 바뀝니다.”

건강한 인생으로 바꾸려면 생각부터 건강하게 바뀌어야 하겠죠. 아버지께서는 건강을 1순위로 생각하시고 40대부터 심신의 건강을 위해 실천하셨습니다. 신실한 신앙생활, 소식(小食), 담배 끊기, 술 절제하기 등 건강법들을 지금까지 꾸준히 실천하고 계십니다. 꼿꼿하시던 아버지의 등이 굽어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나도 아버지처럼 100세까지 건강한 인생을 꿈꾸고 건강법들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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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8일(토)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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