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그릇
결혼해서 나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 큰아이를 낳고 아버지께서 매포읍장으로 발령 나셨을 때 부모님을 뵈러 간 적이 있었다. 매포는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내가 태어날 당시가 궁금했는데 엄마는 그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너는 매포에서 음력으로 3월 2일, 저녁 7시 무렵에 낳았어. 배가 너무 아픈데 네가 안 나오는 거야! 낳기가 너무 힘들어 결국 의사를 불렀단다. 아들 둘은 쉽게 낳았는데 세 딸을 낳을 때는 모두 의사를 불렀지. 언니와 오빠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는 적성에서 낳고 너는 아빠가 여기서 근무하실 때 낳았다. 여기 올 때 할머니께서 빈 밥솥만 줄 수 없다며 밥솥에 밥 한 그릇과 참기름 한 홉을 넣어주셨어. 그 참기름을 아껴 아버지만 드리다가 나중에는 참기름이 찌들어서 못 먹었다. 물자가 귀하고 없으니 아낄 수밖에 없었다. 단칸방에 연탄을 땠었는데 겨울에도 연탄 한 장으로 하루를 살았어. 걸레를 짜서 방을 닦으려면 너무 추워서 걸레가 얼었지. 그래서 너희들 손이 시리 울까? 방에서도 장갑을 끼웠다.”
“그럼 엄마는 안 추우셨어요?” 하고 내가 여쭈었다.
“나는 젊어서, 춥지 않았어.”라고 말씀하셨다.
손이 시리 울까? 우리 손에 장갑을 끼워주셨다는 것은 엄마도 무척 추우셨다는 것이다.
“그럼 집은 관사에 사신 거예요?”
“관사도 아니었고, 1960년대 다른 곳으로 발령 나서 가신 분이 쓰던 집에서 공짜로 살았다.”
“와–, 공짜로 살다니, 시골 인심은 좋았네요.”
‘현재 서울 집값은 장난이 아니다. 나의 막내아들은 서울 옥탑방에서 보증금 천만 원에 월세 50만원을 주고 사는데…….’
내가 태어난 60년대는 지금과 딴 세상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당시 쌀이 없어서, 먹을 것이 귀해서 돈이 있어도 쌀을 살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나는 위로 언니, 오빠, 아래로 여동생, 남동생이 있었다.
아버지가 출장 가시는 날에는 밥 한 그릇을 가지고 물을 넣고 한 솥 끓여 다섯 식구가 먹었다고 하셨다. 겨울에는 연탄 한 장으로 하루를 버티고 알뜰살뜰 살림하며 우리 5남매를 키우셨다.
엄마 말씀을 듣고 나는 ‘엄마, 나 아들 낳고 직장 다니기 너무 힘들어!’라고 응석을 부리듯 말하고 싶었지만 힘들게 5남매를 키우시며 생활하셨던 엄마 앞에서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속으로만 되새기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생각이 난다.
괴테는 말했다.
“과거를 잊는 자는 결국 과거 속에서 살게 된다.”
대한민국은 6.25 전쟁 후 10대 빈곤 국가에서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다. 60년대는 시골에서 집은 공짜로 살 수 있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집값이 폭등하여 젊은 사람들은 적령기에 결혼도 못하고 있다. 여러 원인도 있겠지만 출생률도 현저히 낮은 상태이다. 예전에는 쌀이 부족해서 돈이 있어도 사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쌀 소비가 안 돼서 남는 것 또한 문제다. 시대마다 경제 상황은 달라지고 사람들의 생각도 변하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엄마는 남매들을 정성껏 키워주셨고 그 덕분에 우리 남매들은 잘 살 수 있었다. 찌들어서 못 먹었다는 참기름 한 홉과 한겨울 연탄 한 장으로 버티기, 밥 한 그릇은 알뜰살뜰 살림하며 사셨던 엄마를 떠올리는 상징으로 늘 기억될 것이다. 엄마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고 늘 말씀하셨던 절약, 저축 등 아끼는 생활 습관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것 같다. 어려운 시절에도 5남매를 낳았고 잘 키워주신 엄마!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제 곁에 있어 주세요.’ 마음 깊은 곳에 엄마의 마음을 담으며 나 또한 내 자녀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다. 여럿이 나누어 먹으며 살기 위한 ‘밥 한 그릇’을 생각하며 나는 가난은 대물림되지 않아야 된다는 마음을 가슴속 깊이 느껴본다.